민족 기원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관조/미산 윤의섭 고구려 고분 유적에 삼족오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우리 조상이 왜 까마귀를 해의 상징으로 삼았을까? 천산산맥 天山山脈을 넘으면서 까마귀에 대하여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해발 3.000m가 넘 는 고산지대에는 다른 새는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놀랍다. 고구려 사람들이 해의 정령으 로 까마귀를 등장시킨 것은 그들이 기마 민족답게 말을 타고 널리 다녔고, 까마귀가 뭇 새보다 높은 지 역에 서식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기원전 14.000년에 바이칼 호 지방에서 출토된 쐐기형 석핵 石核은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것과 같은 계통임을 알 수 있다. 소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풀리면서 유목생활이 활발해지고 그 중의 일단이 온화한 기후를 따라 풀과 물을 찾아 동남 방향 중앙아시아 초원, 몽골, 만주 요하, 한반도로 이어지는 이동 루트를 형성했다. 이 경로에는 초원에서 말을 타기 시작하여 진취적인 기동성을 얻었고, 기마 유목인의 강력한 문명 집단 이 형성되었다. 동이 東夷 족은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선조이다. 요하지방에서 한반도에 걸쳐 그들이 가지고 온 선진 문화재, 석기 청동기 황금 철기 기마 문명의 유적 이 셀 수 없이 많다. 선사시대의 고인돌은 한반도 남쪽 호남지방에 전 세계의 50% 이상이 분포하고 있다. 중국계와 남방계의 이입도 자주 일어나 융합되었다. 한민족은 기억력이 좋고 재주가 많은 민족으로 유사 이래 5.000년, 이 땅의 주인이다. 원주민이 소멸하지 않고 신참 세력과 융합하며 온존한 것은 세계 역사 상 드문 일이다. 환국 桓國, 배달 倍達, 조선과 환인 桓因, 환웅 桓雄, 단군 檀君 시조, 신시 神市 기록이 있고, 단군 조선의 건국은 BC 2.333년(2014년은 단기 4347년에 해당함))의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환국, 배달이라는 나라는 7.000년 전의 신화로 추정하고 있다, 고고학이 발달하면 훗날 위와 같은 선사 신화가 하나씩 고증될 것으로 생각한다. 20 세기 전반기에 발굴한 만주의 홍산 등 여러 곳의 요하 문명 유적은 5.000년 전의 유적으로 고증되었고, 고조선의 건국 신화를 실재한 유적으로 재인식하게 하는 사건이다. 그 현장에 나타난 곰 토템 여신상 제단 토기 석기 청동기 등이 우리 조상의 신화 기록을 빼 닮았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민족의 기원을 볼 때 중국 황하 문명은 북방 기마 민족인 동이족보다 후에 발생한 것으로, 선진 문명인 요하 문명의 일부가 황하로 이동하여 토착 인과 융합하며 창조한 문명이다. 중국의 고대 시조로 기록한 황제, 신농, 복희, 치우 등은 동이계 출신임이 여러 기록에 나타난다. 중국이 북방 동이족을 오랑캐라고 한 것은 그들의 중화사상을 정당화하려는 억지에서 나온 역사 왜곡 일 뿐이다. 북방 민족을 막으려는 만리장성은 써보지도 못하고 흔적만 남아 있다. 역사는 북방 동이계의 세력이 중국 화하 華夏족과 교차하며 중원을 지배하였다. 중국 역사에 나오는 5호, 북위, 요, 금, 원, 청 왕조는 북방 동이계 민족이 세운 왕조이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반복 되였음을 볼 때 야만으로 폄하하는 것은 타당 성이 없다. 현대에 중국과 한국(조선)의 양대 민족 국가가 남아 있는 것도 위의 역사가 설명하고 있다. 현재 동북아에서 한국이 주변 4강의 역학 변화에 대응하여 그들과 선린 교역을 전개하며 세계적 강국 반열에서 국운 융성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려가 개성에 도읍을 정한 것, 조선조가 서울을 수도로 정한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대륙의 세력을 방어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평양은 중국 세력과 다툼이 잦은 위치이고, 만주에서 발흥하는 신흥 세력과 다투어야 하는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 개성, 서울을 도성으로 한 것이다. 백두 대간을 따라 강줄기가 서향으로 흐르며 유역에 옥토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 영산강 금강 한강의 하구를 빠저 나와 서해로 모여 개성, 서울로 모이는 수로는, 고개를 넘는 등짐 육로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평양은 황해도 장산곶까지 뻗은 서북 면을 돌아가는 거리가 멀어 해상 물류의 이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삼남지방의 비옥한 땅에서 산출하는 산물과 활발한 유통이 국력의 기반이 된 것이다. 황해도 이북의 땅을 보면 농업이 거의 불가능한 험한 산악지이기 때문에 그곳에 치우쳐 도성을 정한다는 것은 자급자족이 곤란하고, 만주로 나가던지 삼남으로 진출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청 왕조가 중원에 진출한 후에 융흥지지 만주를 보호하기 위해 화하족 금역으로 류조변 柳條邊을 세웠음에도 중국문명에 매몰되여 버린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분단된 북한이 공산화하면서 초기에는 공산권의 경제 협력을 받아 생존하였으나 공산주의가 소멸하면서 자급자족이 안되고,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는 것은 이러한 지정학적 원인도 있다. 북한이 앞으로 개혁 개방화 정책을 써서 외국과 문물을 교류하기 전에는 국민을 살리기 어려워 보인다. 고립을 버리고 국제적 선린 교역을 위하여 고민하고 있으니 개혁 개방의 선택이 임박해 보인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미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동북아 3국의 형세를 이루고 있는 현대는 각국이 과학 기술 산업 진흥과 세계화 신조류에 동참하고 국제 무역으로 상생의 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국제 정세 변화가 일어나며 한반도가 지정학적 위치의 유용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개혁 개방한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량화한 한국경제와 일본경제의 삼합 三合이 유럽과 북미의 양대 경제권보다 더 커지게 되었다. 그 결과, 대륙 해양의 연결 구조를 강화하려는 국제적 의지가 높아졌다. 냉전 시대에 막혀 있던 단절 지대인 북한을 관통하여 태평양 해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면, 그 교두보가 되는 인천-부산에 물류 허브항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의 세계 뉴스는 북핵 문제의 해결과 북한을 관통하는 유라시아 물류 통합의 쾌거를 이구동성으로 바라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기운을 선용하는 우수한 민족 역량, 즉, 위의 역사에서 관조한 내용들이 밀알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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