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족 뿌리의 산책/미산 윤의섭
생물의 다양성이 높아 '세계의 만물 창고'라는 바이칼호를 한 민족의 기원으로 보는 인류학계의 학설이 유력하다. 몽골리안 루트, 알타이산맥 이동(以東)의 기후대, 동양의 고대사 연혁, 등을 참고하여 이해할 수 있다, 바이칼호~초원지대~알타이산맥~몽골~대흥안령으로 동진하며 유목과 기마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류의 이동 기술과 지식 소통을 급진적으로 조장하여 부족 집단이 발생하게 되었다. 목초와 이끼를 찾아 동으로 요하유역-압록강을 만났을 때에는 유목인의 신수(神樹)라는 버드나무(河柳), 박달나무(山檀), 등 강과 산 들판이 어우러진 농업 정착의 이상향을 맞아 정착하게 되였다. 상고사에 나타나는 하백 河伯과 천손天孫의 만남은 우리 민족 개척 정신의 창조물이다.
개전 경작(開田耕作)의 농업혁명이 일어나는 대 변혁을 맞았다. 일정한 구역을 점용하여 영토를 개척한 인류 문명의기원이란 의의가 있다. 5.000 년 전 요하 홍산 우하량의 여신상 제단 곰 토뎀 돌무덤 등 초기 국가 규모의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그동안 신화로 여겼던 단군 조선 건국의 터전이 확인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의 횡 방향으로 등온대(等溫帶)가 형성된 지정학적 특성이 있어서 이동이 자유로워 그 언저리에 또 다른 선진 문화권을 이룰 수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 한부족이 단군 조선을 건국한 북방계 동이족이다.
우리 민족은 요하를 거처 한반도에 정착하는 시기에 다층적으로 하화족(夏華族) 및 인도 동남아 등 남방계와 융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도 삼국시대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인이 대거 도일하여 일본 민족의 원류에 겹쳐 있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보이는 동이(東夷) 흉노(匈奴), 선비(鮮卑), 예맥(濊貊), 조선(朝鮮) 등은 변방 오랑캐라고 혐오(嫌惡)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사기는 중국이 높이 평하는 춘추필법을 써서 표현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황하문명보다 2.000 년이 앞선 요하문명을 무시하였고, 상고사 이전의 갑골문자, 하, 은, 삼황오제 치우 조선 요하문명의 흔적을 황하 문명시대의 것으로 둔갑시키는 등 축소 왜곡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을 천하의 중심으로 설정하고 변방을 미개한 오랑캐로 낮춰 표현했고, 변방을 약하게 유지시켜 중원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태평을 이룬다는 중화(화이 華夷) 사상이 역사 서술의 맥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 등 과거 역사 지우기 영향을 받아 요하문명 흔적을 제외하고, 황화 문명을 기원으로 삼아 사기(史記) 서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0 년 대 중국에 의해 발굴된 만주 요하 우하량 홍산 지역에서는 여신상, 제단, 곰토템, 돌무덤(고인돌), 곡옥(曲玉), 빗살무늬 토기, 비파형 동검 등 초기 국가규모의 유적이 발견되어 동이족의 근거지로 비정되던 곳이다. 발굴된 유물로 보아 한국인의 첫 국가인 단군 조선의 무대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2.333년의 단군 조선이 실재했느냐 아니냐로 설전을 벌이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단군보다 적어도 1,000년 앞서 이미 국가, 즉 선비(鮮卑)의 왕국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다.
요하문명(홍산문화)이 중국이 견지했던 중국 문화와 전혀 다른 동이족의 문화이며 연대도 2.000년이나 앞선 것이 분명해지자 중국의 태도는 돌변한다. 과거에 동이, 즉 북방 민족의 유산을 부정하던 인식에서 탈피하여 이들 문화를 중국 문화의 틀 안에 수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것이 한국 등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동북공정의 실체다.
국제적 규범의 일탈을 막기 위하여 5.000 년 전에는 중국도 한국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요하문명 유적이 중국 영토 내에 있다는 이유로 요하문명이 현대 중국의 정사(正史)라고 편찬함을 삼가기 바란다. 다만, 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명을 서술한 서양사와 같은 맥락으로 전개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중국대륙에는 선사시대 이전에 동이계가 이주한 흔적이 있고, 한(漢) 당(唐)이 백제. 고구려 말 지식인 기술자 집단, 수십만 명을 장안 근교로 이주시켜 동이족과 겹치게 되고, 중세 이후 요, 금, 원, 청의 동이(東夷)족이 중국을 통치한 600여 년 간에 화화족과 동이족의 뿌리가 수 없이 다층으로 겹쳐 있다.
우리 민족은 고려, 조선의 1.200여 년 간 한반도에서 언어문화를 독창적으로 유지하며 문명국가로 존립하고 있다. 중국의 역대 민족 국가와 갈등을 여러 차례 겪었으며, 일제 병탄의 화(禍)를 극복하고, 21세기의 다문화 민족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은 동이계 원류(북방인)에 중국 및 남방인이 융합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8년 현재 190 여 개 외국에 한국 교포 700만 명이 살고 있고, 150 여 개 국의 외국인 200만 명이 한국에 살고 있다. 역사에서 보듯이 불가피하게 겹 처진 혈동을 볼 때, 순혈주의 민족이란 주장은 미래시대에 맞지 않다. 초연결 시대를 지향하는 4차 산업 혁명을 목전에 둔 미래에는 교류가 더욱 활발하여 국가 경계 개념도 모호해지는 인류 생태계가 전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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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註: 춘추필법 春秋筆法
중국의 경서(經書)인 춘추(春秋)와 같이 엄정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대의명분을 밝혀 세우는 역사 서술의 논법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사마천은 춘추필법으로 사기를 저술하면서 춘추시대의 인물의 훌륭한 행적을 인용하면서 후대에 많은 모범적 역사관을 정립하는데 공헌하였음은 사실이지만, 중화사상을 의식하여, 북방 동이족이 요하문명에서 2.000여 년간 후기 중국(황하문명) 문화에 끼친 거대한 사실을 은폐 과소평가한 흠을 남겼다고 본다. 진시황이 분서갱유 등 상고사를 부정하고, 유일 천하관(維一天下觀)으로 좁혀진 영향을 받아, 요하문명을 무시하고 황하문명을 기원으로 서술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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