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상고사 찾기/미산 윤의섭
중국 고전 古典은 우리 문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한편 고전은 그 빛과 그늘도 있다.
세계무대에 나선 대한민국은 잃었던 상고사를 되찾아 세우자는 뜻이 크게 일고 있다.
2.000여 년 전에 사마천의 사기를 동양사 전범 典範으로 여겨왔다. 20C 상반기에 이르러
요하 遼河 유역에서 그동안 몰랐던 유적이 발굴되면서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발견된 요하문명은 10.000~5.000년 전 북방 유목 동이(배달)족의 한 韓 조선 문명이다.
즉 동양의 시원 문명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하는 3국 공동의 시원 문명이다.
중국은 이곳에 '중국제1촌', '요하문명'이라 명명했다. 중화민족은 황, 염, 치 3조의 후예
이다라고 했다. 영토 내 소수민족을 포함함을 함의한다. 동이계 야만이라고 하던 치우를
중국의 조상으로 올린 것이다. 중국 요하지역의 신석기 시대인 7.000 년 전의 유적을 "통일
다민족국가론"으로 중국 역사에 포함했다. 중국은 사기, 25사의 수정본을 간행하는 등
교과서에 올려 선전할 태세이다.
요하문명의 고조선인 일부가 황하로 이동하면서 황하문명을 건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이족으로부터 요하문명을 전수한 황하 세력은 정복세력(동이족)과 중원을 교차 지배
하였다. 황제와 치우의 탁록 전투는 중원 지배권 다툼의 효시이다. 황하문명의 주역이 된
하화족은 화이 華夷를 구분하며 중화 사관을 주창했다. 중국의 주변을 야만 오랑캐로 봤다.
유교 가치가 지배하면서 이 역사는 2.000여 년간 지속했다. 한국은 동이문명 계승자로서
의 정체성을 견지 堅持하면서 동북아 3국 정립 鼎立의 형세를 이루게 되었다.
요하 유적에서 7.000~5.000 년 전 옥기류, 비파형청동검, 빗살무늬토기, 복골 卜骨이 나왔
고, 5.000~3.000 년 전 신석기와 청동기 혼재 시기에는 재배용 씨앗(기장 대마), 옥잠룡 길쌈,
관수 시설 등이 나와 농업혁명의 시원으로 판명되었다. 별자리고인돌, 피라미드적석총,
여신 전, 천단, 곰 짐승 토템(神獸象), 취락과 해자, 석성의 치, 상형문자인 도부문자 陶符
文字, 신수문예기 神獸紋禮器. 명도전 明刀錢, 세문청동경, 등은 신분 등급 분화가 갖춰진
제정일치 祭政一致의 국가 조직을 모두 갖췄음을 의미한다.
북방 유목인 이동 루트의 동쪽 종착지인 요하문명 시대에는 단군 조선이란 국명밖에 없다.
황하문명에 관련한 인물이나 국가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중국 고전서의 문장 중에는
<삼한><동이><동방><조선><구이>로 부터 왔거나 유래한다는 서술이 다수 발견된다.
<시경 한혁편> 한후는 주 선왕과 국경선을 논했다. <시경 잠부론편/왕부>한후는 연 동방
의 임금이고 후에 위만에 망하여 해동으로 갔다. 등의 문장이 발견된다. 즉 한 韓은 국명
이고 위만조선 이전의 나라임을 밝힌다. 이런 고서와 유적들에 의해 사료가 집적되며 빅
데이터로 탐사가 진전되면 한 韓과 단군 조선의 실체를 고증하게 될 것은 시간문제다.
치우를 중국의 조상으로 인정한 것은 동이계 문화가 융합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고서의 탐사와 유물들은 단군조선이 신화가 아니라 실존 인물임을 밝힌다. 중국 측은 고
조선의 유물 발견에 자극받아 황하문명을 요하문명 시대로 끌어 올리고 있다. 그러나
주은래 周恩來 중국 총리가 기자 동래설을 허구라고 부정한 것을 비롯하여 만주지방이 고
조선의 강역이라고 하며 이웃 나라의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기록이 존재한다.
현대 중국의 국수주의적 역사수정은 인류사 공존에 바람직하지 않다.
이집트문명이 그리스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문명이 로마의 것이 아니듯이 요하문명이
중국의 것이라고 표현함은 적절하지 않다. BC7.000년~BC1.000년까지 6.000년 동안
후빙기 때 만리장성 이북 요녕지방에는 빙하가 녹고 물이 풍부하여 숲과 초지가 울창
했다고 알려 젔다. 20C 초 일제는 정한론이란 흉계로 반도식민사관(일본기원 2500년
이전의 역사를 부정)이란 우리 민족 말살 행위를 집요하게 저질렀음이 요하문명을
발견하면서 명확해졌다.
1). 지정학적 이유
요하문명은 BC1.000년 무렵 한랭 건조한 기후로 변하여 황하문명으로 이동했고,
대륙의 인구 증가와 함께 철기 농업혁명이 문명 이동을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
2). 문화와 인위적인 이유
중화사관에 의한 동이역사 지우기와 '유교 가치'의 벽이 동이계 상고사를 잊게 하고,
일제의 반도식민사관의 주도면밀한 역사 왜곡으로 말미암아 한국 상고사가 지워졌다.
유적은 인류가 기록하지 못했던 것을 자연이 기록해준 위대한 유산이다. 없애버릴 수
없는 수천 년 전의 역사 유적 유물이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계속 발굴되고 있다.
사회주의식 중국몽을 제창하며 다시 부상하는 중화주의를 경계하며, 이 거대한 역사의
반추를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실한 역사 정립을 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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