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하순 코레일로부터 미카3-129호의 문화재 적격 심의회 참석 요청에 동의한 다음 날 심의 주최 국가유산청 측에서 필자는 참석대상이 될 수 없다 하여 죄송하다는 전화를 받은 후 엊그제 심의위원 10명 전원 의견일치로 국가등록 문화재에서 말소시켰다는 어이없는 보도자료를 보고 이 글을 쓴다.
필자는 1962년 공무원 임용시험을 거쳐 수인선 어천역, 서울역, 장항역 역무원을 거쳐 서울열차사무소 승무원(차장), 왜관 역무팀장, 연무대·간치·옥마·웅천·신성·서천·정읍··장항·대천역장 및 대전열차사무소장, 교통공무원교육원 교수, 철도청 여객과장, 수도권전철운영단장을 끝으로 퇴직 후 철도대학 겸임교수를 거쳐, 2004~2014년 철도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철도박물관장 시절 문화재청의 철도 분야 근대 문화유산 목록화 조사 의뢰를 받고, 북쪽 휴전선 옆 월정리역부터 제주도까지 현지 조사를 거쳐 228종 4,222점을 조사 보고함에 따라 2007년 11월 문화재청은 이를 도서화하여 옆 사진 속의 “근대문화유산 교통(철도)분야 목록화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 조사를 위하여 오래전 여행 중 흑산도에서 보았던 협궤기관차와 객차가 생각이 나서 찾아갔으나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 너무 낡아 지난해 폐기했다는 대답에 실망했던 기억과 부산철도차량관리단에 갔을 땐 6.25 전쟁 중 이곳에 근무했던 미군들 후손 25명이 남긴 방문 기념비(사진)를 보고 새삼 감명을 받기도 했었다.
2007년 보고했던 조사보고서의 미카3-129호가 2008년 6월 국가 등록문화재 지정 대상이 되어 심의위원으로 대전철도차량관리단에 보존된 미카3-129호의 설명판을 확인한 후 사무실에서 기관차마다 보존된 운행기록 일지에서 확인된 사항을 발췌하여 표지판을 제작했음을 확인한 바 있다.
'미카3-129호‘라 명시된 근거는 1953년 교통부 발행 ”한국교통동란기“의 ’미카 三-一二九‘ 관련 기록과 문화재 지정 검토 전인 2007년 이전부터 철도청 대전철도차량관리단에 보존된 미카3-129호의 운전일지 발췌 기록이 존재하는데도 ’미카3-219호‘라는 주장은 동란기의 세로쓴 한자를 잘못 읽은 결과라 판단된다.
다만 사건 30년이 지난 1983년 어떤 분이 동일 필체로 기관차 번호를 미카3-219호로 기록하여 당시 기관조사였던 황남호, 현재영씨 서명을 받아 인터넷에 올린 기록을 보고, 한국교통동란기 한자를 잘못 읽은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으며, 최근 딘 소장 회고록 등 미국 자료를 근거로 7월 19일 아닌 20일에 군 보급품 화차 회수를 딘 소장이 직접 지시한 것 이라는 등 주장을 펴는데,
당시 대전을 지나 옥천까지 후퇴하여, 딘 소장이 행방불명되었음을 깨닫고 19일 20시 이후에 북쪽으로 되돌려 기관차가 운행된 것이며, 다음날 16시 이후에 군수품 회수를 위해 다시 대전역으로 향하려 했으나 전날 사고로 기관사가 없어 운전기술이 있는 수송원 장시경씨가 운전하여 재진입했으나 실패하였음에도, 김재현 기관사 사망일이 7월 20일이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2012년 6월 26일 미국 정부는 뒤늦게 김재현 기관사 유족에게 공로 훈장과 감사장을 전달했으며, 당시 훈장의 내용에 1950년 7월 19일 김재현 기관사의 행적이 자세히 기록된 사실을 왜 인정치 않으려는지 이해하기 어려우며, 금 번 심의회에 왜 이 사건 기록을 많이 알고 있는 필자를 참석 제외 인으로 정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로 훈장 내용 번역문) 김재현씨는 1950년 7월 19일 철도 기관사로서 그의 조국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을 위하여 헌신하였음을 인정합니다. 김씨는 당시 대전 부근에서 북한군에 포위되어 있던 미군 전투부대를 구조하기 위하여 기관사의 신분으로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미군 전투부대는 Dean 소장이 지휘하던 미군 24보병사단에서 차출한 특공대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특공대가 타고 갔던 증기기관차는 적진에 침투에 성공하였으나 적의 강력한 공격으로 투입된 특공대원 30명 중 27명이 전사하였습니다. 24사단 소속 특공대원들이 북한군과 교전하는 동안 그들을 지원하던 김씨는 8발의 총탄을 맞은 후 사망하였습니다. 미합중국, 대한민국, 그리고 미국국방부는 김씨가 공산주의자들의 억압과 침략의 포화 속에서 보여준 영웅적이고 용감한 자기희생을 높이 추앙합니다. 김씨의 이러한 독보적인 업적으로 인해 김씨 자신은 물론이고 미국국방부 또한 크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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