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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180510) 보도자료
손길신 조회수:704 116.36.19.127
2018-05-10 13:45:29

경향신문 입력 : 2018.05.09 21:00:00 수정 : 2018.05.09 22:23:27
“우리 철도는 원래 대륙 철도였죠” 글·사진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우리 철도는 원래 대륙 철도였죠”
 ㆍ손길신 철도역사문화연구소 명예회장에게 듣는 ‘남북 철도 연결’

손길신 철도역사문화연구소 명예회장이 9일 서울 종로구 한국철도운수협회에서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1911년 11월. 압록강 철교가 개통되면서 부산에서 중국 단둥까지 국제열차가 주 3회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 열차를 타고 1936년 손기정 선수는 하얼빈을 거쳐 바르샤바와 모스크바를 지나 독일 베를린으로 갔다. 그리고 히틀러와 일본 군부가 보는 앞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냈다.
1949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누볐다. 69년 만에 한반도가 다시 대륙과 이어질까. 4·27 판문점선언으로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손길신 철도역사문화연구소 명예회장(75)을 만나 대륙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963년 수인선 어천역 역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하며 철도와 인연을 맺은 손 회장은 2014년까지 철도박물관장을 지낸 한국철도 역사의 산증인이다. 
- 부산과 서울서 출발해 파리와 런던으로 가는 것은 여전히 공상처럼 느껴진다.
“6·25전쟁으로 인해 단절됐을 뿐 원래 우리 철도는 대륙철도였다. 69년의 세월이 우리의생각을 완전히 바꿔놨다.” 
- 대륙철도는 언제부터 구상했나. 
“1905년 5월25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경부선 개통식이 열렸다. 호러스 앨런 주한 미국공사는 이날 축사에서 ‘내가 프랑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차장에게 나를 남대문역에서 내릴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할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는 경의선(서울~신의주) 개통도 안됐을 땐데 벌써 대륙철도로 연결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 대륙과 처음 이어진 게 언제인가. 
“1906년 4월 용산에서 신의주까지 경의선이 개통됐다. 이어 1911년 11월1일 압록강 철교가 개통됐다. 그러면서 우리 열차가 부산에서 중국 단둥까지 갈 수 있게 됐다. 주 3회씩 국제열차가 출발했다. 그러다 창춘(長春)까지 연장됐다. 1938년10월에는 베이징까지 이어졌다. 부산~베이징 간 직통급행열차가 있었다. 38~39시간쯤 걸렸다고 한다.” 
- 대륙으로 가는 철도는 남북이 분단되면서 멈춰선 건가. 
“1945년 광복으로 일본인 철도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돌아가자 철도 운행에 문제가 생겼다. 일본은 고급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았다. 열차는 운행이 되다 안되다 하면서 1949년까지는 달렸다. 남북관계가 험해지면서 운행을 완전히 멈췄고 6·25전쟁으로 단절됐다.” 
- 코레일이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하려는 것도 대륙철도 연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나라와 열차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연락운송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한국을 출발한 여객이나 화물을 중국 열차 혹은 러시아 열차로 환승 또는 환적하려면 3국 간에 사전 협약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철도협력기구가 OSJD다. 구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이 주도해 결성된 기구인데 가입하려면 만장일치 찬성을 받아야 한다. 지금은 북한과 중국이 사실상 반대를 하고 있다. 남북 화해 기조가 좀 더 진행되면 가입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일제강점기에는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이탈리아,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등과도 체결이 돼있었다.”
- 대륙철도에 대해 일본 관심이 크다. 
“손기정 선수 표를 보면 ‘도쿄~베를린’으로 돼 있다. 일본에서는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하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으로 건너온다. 부산역 2층에는 호텔이 있었는데 거기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갔다. 일본은 언제나 대륙으로 나가길 갈망했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해저터널이다. 2011년 일본 해저터널협회에서 찾아왔다. 민간단체에서 하길래 ‘왜 정부가 아니고 민간이 하느냐’고 물었다.” 
- 그쪽 답변이 뭐였나. 
“한국은 반일감정이 있어서 일본 정부가 추진하면 어려울 거라고 판단해서 민간이 한다고 하더라. 그때 이미 10년째 활동한다고 했다. 최근에 우리 학자들 중에서도 해저터널에 찬성하는 기고를 하는 사람들을 봤다. 일본이 섬나라를 면하려면 해저터널밖에 방법이 없다.”
- 철도인으로서 한·일 해저터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은 아니다. 해저터널을 뚫으면 우리보다 일본 사람들의 편익이 더 클 수 있다. 우리가 대륙까지 완전히 잇고 나서 그 뒤에 생각해볼 일이다.” 
- 남북 철도 연결 사업 중에는 금강산선 복원도 있다. 
“2004년 금강산을 방문할 때 보니까 금강산으로 가는 철길이 폐허가 되어 있었다. 전주는 쓰러지고 잡풀이 우거졌다. 마음이 아팠다. 금강산선은 철원에서 내금강까지다. 일본인 기업가인 구메 다미노스케가 승용차로 금강산을 다녀온 뒤 ‘이 귀한 산을 왜 썩히냐’며 조선총독부에 건의해 만든 철도다. 험준한 산맥을 이용해서 수력발전소 9개를 만들었고, 그 전기로 열차를 운행했다. 최초의 전기철도다. 우리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전기철도를 타고 금강산에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 남북 철도 연결이 한반도에 주는 의미는 무얼까. 
“철도 건설 과정에서 상당한 일자리가 나오지 않겠나. 선로를 따라 러시아 가스관을 연결할 수도 있고, 관광산업에도 영향이 클 것이다. 대륙철도를 이용하면 물류비도 엄청나게 절약된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거다. 그 역할에 철도가 앞장섰으면 좋겠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092100005&code=100100#csidx46171c0e53ac3ccbe50e5db524a9dcd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092100005&code=100100#csidxf7aaf4398e52ba194b5269dd9d6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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