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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행 report (장태창 기자 2015.08.22 17:00:34)
철우회 조회수:1905
2015-08-24 19:47:00

(사)철우회 창립 50주년 기념, 회원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추진

(사)철우회는 창립 50주년을 기념, 회원들에게 러시아 대륙, 시베리아 횡단열차(TSR : Trans Siberian Railroad)를 경험해 보는 이른바 러시아 여행상품을 기획했다.

8월 12일, 러시아 여행을 신청한 24명은 처음으로 러시아 투어에 나섰다.

오전 10시 30분, 아시아나 항공기를 이용, 인천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항공사가 제공하는 기내식으로 점심을 먹으며 오후 14시 30분 하바로프스크 공항에 도착했다.

 

하바로프스크 공항의 첫 인상은 마치 어느 시골의 기차역처럼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러시아 땅, 하바로프스크의 푸르른 자연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간단히 입국절차를 마친 여행단은 현지 가이드(박태현) 미팅을 가진 다음 광장으로 이동, 러시아 도착 기념 사진 촬영을 했다.

인구 16만의 하바로프스크 시내는 차량이나 사람들로 붐비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바로크 양식이 인상적인 건물들은 역사를 간직한 듯 고풍스럽고 시내는 한국의 여느 시골읍내처럼 비교적 한적했다.

전차와 로봇 같은 느낌의 경찰, 곳곳에 상의를 탈의하고 다니는 시민들이 눈이 띠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아니면 가급적 햇살을 많이 쬐려는 러시아인들의 습성 때문인지 버스운전기사도 상의를 벗고 운전하는 모습이 공중도덕, 매너를 떠나 잠시나마 보는 이를 웃게 만들었다.

레닌광장, 디나모 광장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20만 병사의 영혼을 기리기 위하여 세계2차대전의 승전국인 러시아(구 소비에트연방공화국)는 모스크바를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24시간 365일 그야말로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여행 첫날이라 가볍게 하바로프스크 투어를 마친 여행단은 러시아식 한식으로 식사를 하고 숙소인 호텔(INTOURIST)로 가 여장을 풀었다.

호텔은 드넓은 들판과 아무르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행단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 입은 다음 노을지는 아무르강을 내려다보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보드카, 시원한 맥주로 피곤도 잊은 채 여행이 주는 낭만과 여유를 즐기며 이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 보드카 : 밀, 감자, 옥수수 등 곡물을 원료로 주조한 러시아의 대표적인 술

8월 13일, 하바로프스크의 아침이 밝았다. 호텔에서 제공한 아침식사를 마친 여행단은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하바로프스크 향토박물관을 둘러보았다.

향토박물관은 1895년에 지은 건물로 1세기를 훌쩍 넘긴 붉은벽돌 건물로 러시아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아무르 강변 전망대, 러시아 정교회. 꼼소몰 광장을 무더위와 씨름하며 시내 관광에 나섰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러시아의 여름이 무덥지 않다는 것은 이제 흘러간 옛말이 되었다.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러시아 정교회는 건물 자체가 하나님의 권위를 상징하듯 웅장하고 거대했다.

폭염속에서도 우리를 맞이한 러시아 정교회는 엄숙하고 경건했다. 교인들(러시아인)이 촛불을 켜놓고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은 아름다움, 신성 그 자체였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기자도 마치 신을 대하듯, 마음으로부터 저절로 기도가 우러나왔다.

러시아 재래시장의 풍경은 한국의 재래시장이랑 비슷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먹을 것을 챙긴 다음, 서둘러 하바로프스크역으로 향했다.

허둥지둥 시간에 쫓겨 하바로프스크역에 힘들게 도착, 블라디보스톡(이하 블라디로 표기)까지 13시간을 가야 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어렵게 탔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 블라디 : 정복 / 보스톡 : 동쪽의 의미가 더해져 ‘동쪽을 정복하라!’는 뜻으로 블라디미르(지명)로 명명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침대열차가 여기서는 보편화 되어 있었다.

블라디에서 모스크바까지 장장 9288km, 6박 7일을 달려야 하는 열차이고 보면 기차안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은 그들만의 기차문화이리라.

우선 기차를 타는 데에도 열차 승무원이 일일이 표 검사를 하고 탑승이 가능했다.

대한민국에서 온 여행단의 경우, 여권과 열차표를 일일이 다 확인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같은 일행이라고 하여 자리를 바꾸거나 이동하는 것도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화장실 이용은 열차가 운행중에만 가능하며 정거장 도착 30분 전, 출발 30분은 아무리 급해도 화장실 사용이 불가하며 열차 차장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화장실 문을 잠궈버렸다.

4명이 잘 수 있는 침대칸(꾸페)은 2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비좁은 공간이었다.

또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기차가 정차하는 동안에는 엔진을 끄고 에어컨 가동을 하지 않아 그야말로 기차안은 찜통(사우나)이었다.

화장실 문이 잠겨 세수 한번 할 수 없으며, 통풍이 되지 않아 기차안의 먼지 또한 승객들이 고스란히 마셔야 했다.

기차를 오르고 내리는 계단 또한 아주 불편했다. 우선 시베리아 열차는 광궤열차(1524mm)라 우리 열차 보다는 넓고 높았다.

출입구 계단 역시 짐을 들어 올리고 사람이 오르내리기에는 무척 힘들었다. 태어나 처음 타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단 25명에 대하여 일일이 다 표검사를 하느라 8월의 뙤약볕 아래서 우리는 스트레스와 비지땀을 흘려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17시 20분, 202 열차가 하바로프스크역을 출발했다.

열차를 이용하는데 있어서 이용자의 편의나 서비스는 처음부터 없어 보였다.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미비하였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러한 습성은 제정러시아와 과거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 같았다.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인들은 과거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국가가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잔재가 남아 있기도 하거니와,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하여 불만이나 불평을 하지 않는 것이 국민들 정서라고 했다. 기차가 출발시간을 지키지 않고 한 시간을 연착해도 한마디 말하는 사람 없이 마냥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사회 전반적으로 언제부터인가 뿌리를 내린 지 오래이며, 정부에서 주는 연금 같은 것도 주는 대로 받는다고 했다.

기차가 움직이고 화장실 문이 열리고 에어컨이 가동되자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4인승 침대칸이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4인이 며칠 동안 지낼 수 있도록 나름의 편의시설이나 최소한의 공간이 주어져 있었다.

짐 정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 시트를 깔고...화장실 볼일을 보고 고양이세수나마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에어컨 성능도 덥지 않을 정도로 좋아졌다.

그제서야 준비해온 맥주 한 캔을 마시는 여유가 주어졌다.

마주 앉으면 상대방의 호흡이 내 얼굴에 와닿고 무릎이 맞닿을 공간에서 처음보는 사람들끼리 옷도 갈아 입어야 하고, 준비한 음식도 먹고...이방인이 낯선 사람과 같이 13시간의 밤을 같이 보낸다는 것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여행)가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아이러니, 여행이 주는 묘미였다.

우리 방에는 여행단 3인에 러시아 사람(안드레이) 한명이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블라디까지 길동무가 되어 동행하게 되었다.

안드레이(50세)는 토목기사로 일하고 있으며 소냐 라는 예쁜 딸과 아내는 옆방, 안드레이는 우리 방에 탑승하여 이별 아닌 이별로 하룻밤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안드레이는 보기와는 달리 친절하고 세련된 매너의 사내였다.

옆방에 가더니 보드카와 아내가 직접 키우고 만든 오이안주를 가지고 돌아왔다.

코리아에서 온 우리에게 러시아의 명물, 보드카를 맛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안드레이는 인천에서 생활한 적이 있으며 소주와 김치 같은 한국식문화를 아주 좋아하며, 늦어도 2016년에는 코리아에 가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자신의 플랜을 털어놓으며 우리는 한순간 동지가 되어 보드카와 맥주를 즐기며 길동무의 인연을 자축하며 즐겼다.

블라디까지 13시간을 꼬박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안에서 바라보는 러시아의 밤풍경은 근사했다.

우선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 위로 쏟아져 내리는 별빛들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더했다.

가도가도 불빛 하나 없이 펼쳐지는 대지, 달빛·별빛에 투시되는 러시아의 푸른 자작나무 숲이 여행의 피로감을 덜어주었다.

처음에는 숨이 막히는 공간이었지만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고 나니 4인이 쓰기에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편안해졌다.

침대 역시 보기보다는 편했다.

그렇게 중간중간의 기차역에 정차하고 손님이 내리고 타고 13시간을 달리다보니 어느새 여명이 밝아왔다.

장장 9288km의 러시아 시베리아 황단열차의 시발점-아침 7시 경, 블라디역에 우리는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현지가이드 유승호(러시아 유학생 출신)가 열차 도착 시간에 맞춰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블라디역에 도착한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지점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버스로 이동, 고려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는 마치 집에서 먹는 것처럼 밥에다 김치, 감자볶음, 된장국 등 우리에게 익숙한 반찬들로 여행자의 속을 풀어주었다.

식사 후 느긋하게 모닝커피까지 마신 일행은 러시아의 유일한 부동항(얼음이 얼지 않는), 블라디항구의 극동함대사령부, 혁명광장, 꺼지지 않는 불, 개선문을 차례차례 관람했다.

전통 러시아식 음식으로 점심을 마친 우리는 블라디 시내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짐을 들여놓기 위하여 블라디에서 묵을 호텔에 들러 각자 숙소를 배정받았다.

짐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은 우리는 버스를 타고 2012 APEC(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이 열린 루스키섬으로 이동했다.

루스키섬은 바닷가 언덕 위에 위치, 한마디로 큰 나라 러시아답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지리적 환경이 아름다웠다.

지금은 극동국립대학교 캠퍼스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유승호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루스키섬을 돌아본 우리는 다시 블라디 시내로 돌아왔다.

우리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 아리랑에서 킹크랩으로 만찬을 즐겼다.

호텔로 온 우리는 팀별로 술을 한잔하며 느긋한 블라디의 밤을 즐겼다.

8월 15일 아침이 밝았다.

호텔에서 준비한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우수리스크로 행했다.

블라디에서 우수리스크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러시아의 국도를 따라가며 다시한번 러시아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실감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평원, 지평선을 따라 이어지는 목초지대, 자작나무숲이 정말 여행자들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은 곳곳에 많았다.

러시아는 인구를 늘리기 위하여 多産정책이 발달했다.

직장인이 아이를 낳으면 출산휴가 3년, 둘째를 가지면 우리 돈으로 1400만원 상당의 지원이 나오고 셋째를 낳으면 땅 100평을 무료로 준다고 했다.

또한 국가경제 산업과 발전을 위하여 일년에 60만원(세금)만 내면 땅 3천 평을 내 땅처럼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연해주 우수리스크는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고 발해의 땅이기도 하다.

지금도 3만여 고려인이 살고 있으며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그런 땅이었다.

수많은 우리 민족이 당시 스탈린의 소비에트 정부의 시베리아 강제 이주 정책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간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 바로 이곳 우스리스크였다.

먼저 도착한 곳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과 맞서 싸웠던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부터 찾았다.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에는 마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찾아온 고려인들과 손에 태극기를 든 학생들로 붐볐다.

광복 70주년 기념식을 치루던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를 반갑게 그리고 뜨겁게 맞아주었다.

한 민족, 동포를 실감하며 저들의 격의 없는 환대에 콧등이 다 시끈했다.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이상설 선생을 참배하고 만세삼창과 함께 기념촬영도 했다. 발해의 땅, 한마디로 광활했다.

발해가 얼마나 큰 나라였던가를 실감했다.

내성과 외성의 축조...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기름진 땅, 강물이 흐르고...지금까지 이 땅에 발해가 있었더라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는 또 어떻게 변했을까... 여행단은 발해의 땅에서 선조들을 생각하며 떠나기 전 \'선구자\'를 합창했다.

고려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그야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풍미가 살아있는 음식들이라 더욱 맛있고 정겨웠다.

특히 고사리 나물은 동토의 땅에서 죽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남은 고려인들의 애환이 서린 것 같아서 더욱 애잔했다.

고려인문화센터, 역사박물관을 살펴보았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이 먼 땅에서 투쟁해 온 선열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물들과 역사속의 영웅들이 거기에 다 있었다.

항일 독립운동에 군자금을 지원하고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최재형 선생의 생가를 돌아보았다.

지금은 버려진 집, 초라하고 잡초만 무성했다.

연해주 우스리스크에서 우리 선조들의 정착과 핍박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며 광복절 70주년의 의미를 새삼 가슴 뜨겁게 아로새기며 블라디로 돌아왔다.

러시아 여행의 마지막 밤, 블라디의 밤은 또 그렇게 우리를 찾아왔다.

올리비에(야채 샐러드), 보리쉬(국), 퓨레&카틀렛, 블리니(러시아 전통 전) 등 전통 러시아 식단으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만찬을 맥주, 보드카와 함께 즐겼다.

8월 16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아침이 우리를 깨웠다.

아침식사를 마친 여행단은 블라디의 자랑, 금각만과 아무르 만 해양공원, 독수리 전망대 등 블라디의 명소를 둘러본 다음 기념품 쇼핑 등 귀국 준비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우리가 떠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여행 일정 막바지에 비가 뿌렸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내내 비가 차창을 때렸다.

차창에 러시아에서의 지난 4박 5일(8월 12일~16일)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이번 여행에서 아쉬웠던 점, 미비했던 점, 좋은 점 등 이번 여행을 동행했던 24명의 여행소감을 주고받으며 마지막 보드카를 곁들여 점심을 했던 일도 이젠 추억으로 밀려났다.

블라디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탑승 절차를 밟으며 여행의 마지막을 갈무리했다.

신기하게도 탑승 수속을 마치자 내리던 비는 그쳤고 블라디의 공항 전경이 신기루처럼 다가왔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불라디 공항과 드넓은 초원의 푸르름이 정말 아름다웠다.

8월 16일 15시 50분,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인천국제공항 행 아시아나 항공기에 탑승한 우리는 러시아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92세까지 88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기자는 가족들과 함께 9288km, 시베리아의 겨울 자작나무숲과 초롱초롱한 별을 보며 한민족의 시원이기도 한 저 바이칼 호수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그날을 꿈꾸며 이번 여정을 모두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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