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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전무에서 바리스타로 변신한 男子 김문한!
철우회 조회수:969
2013-06-02 15:54:07
변신은 또 다른 삶의 에너지! 여객전무에서 커피 메이커, 바리스타로 변신한 男子 김문한! 산은 늘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듯, 산을 내려오기도 한다. 인생은 늘 그런 것이다. 김문한, 그에게도 오르막 내리막이 왜 없었겠는가? 그의 근무처는 코레일 서울본부 1층의 ‘카페테리아스테이션’이다. 카페테리아 창업은 (사)철우회와 코레일이 철도퇴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직원들의 복지후생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철도퇴직자 일자리 창출 1호가 바로 김문한 (사)철우회원이다. 그가 카페테리아에 바리스타로 일하는 데에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실과 책임감도 있겠지만, 평생 집보다도 더 많이 더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곳,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철도이기 때문에 남다른 애정과 사명감과 자긍심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집(산본)에서 일터가 있는 서울역(카페테리아)까지 출근하는데 1시간 20분, 퇴근까지 합하면 하루에 2시간 40분을 출퇴근에 투자하고 있다. 그렇다고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철도맨으로 살아온 것에 자부심과 함께 감사했듯,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일하는 것을 그는 감사하며 오늘도 열심히 씩씩하게 살고 있다. 코레일의 새까만 후배들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쓰고 커피를 배달하고 심지어 가게 청소, 걸레질까지 도맡아 하는 현실로 보아 자존심에 생채기가 날만도 한데, 남자 김문한은 그렇지 않다. ‘노동’ 일하는 즐거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65세의 싱글벙글남이다. 2000년 6월, 그는 33년간 다녔던 직장, 철도청(현 코레일)을 갑자기 퇴직했다. 2006년이면 그는 명예로운 정년퇴직을 하게 되며, 평생 철도에 몸과 마음을 다바쳐 일해온 자긍심, 영원한 철도맨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정년퇴직을 6년 앞두고 그는 느닷없이 사표를 냈다. 사랑하는 남동생이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긍심이나 명예보다는 그래도 남동생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정년퇴직의 명예-가치보다도 동생이 소중했던 데에는 끈끈한 우애도 우애지만 동생을 사랑하는 형의 큰마음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2000년 퇴직당시로 돌아간다. 퇴직을 한 그는 남동생이 도움을 청한 필리핀으로 곧바로 날아갔다. 남동생은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형에게 오랜 조직생활(철도)이 몸에 밴 형에게 회사의 조직(사람)관리를 부탁해 온 것이다. 남동생이 아니라면 그가 직장까지 관두고 그 먼 이국땅에까지 갈 사유는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남동생을 위해 난생 처음 필리핀 생활을 시작한 그는 베트남을 거쳐 2003년 경 해외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그는 철도 근무 노-하우에 힘입어 곧바로 인천지하철에 입사, 코레일 계열사인 코레일 네트웍스(철도지킴이)로 또 다시 레일과 인연을 맺었다. 철도지킴이가 하는 일은 부정승차 단속과 잡상인 단속이었다. 평소 책임감이 투철했던 그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었다. 투철한 책임감과 인정이 정면으로 부딪힌 사건이 터져 그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2007년인가. 지하철 4호선 과천청사역에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40대 여자손님이 청소년카드로 부정승차를 하다가 그에게 걸린 것이다. 부정승차를 하다가 적발되면 30배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과태료를 물지 않으면 처벌까지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부정승차하다 절박된 승객에게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번만 봐주세요 네에 아저씨?!” “안그래도 먹고 살기가 막막해요!” 여자승객은 울며불며 돈이 없어 그랬으니 한번만 봐달라며 그에게 매달렸다. 그러자 그의 마음이 흔들렸다. 지지리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9남매의 맏이로 살아온 유년의 추억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양군이다. 고향에 살 때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자로 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의 벼랑으로 추락한 집안은 먹고 살기 위해 도회지, 서울로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더욱 비참했다. 9남매가 먹을 양식은 처음부터 없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싶어도 그렇게 할 곳이 마뜩치가 않았다. 술도가에서 버리는 술찌개미를 얻어다 굶주린 배를 채우려다 온 가족이 취해서 해롱해롱 거리던 유년의 기억들, 심지어 버린 술 찌개미를 주워먹은 병아리도 술에 취했다. 춥고 배고팠던 유년을 떠올리자 김문한은 더 이상 부정승차 단속을 냉정하게 할 수가 없었다. 법집행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동병상련(同病相憐), 人之常情이라 그만 마음이 약해져 버린 것이다. 돈이 없어, 가난해서 부정승차를 한 사람에게 과태료(요금의 30배)를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 그의 여린 심성으로법대로 처벌한다는 것이 결콘 간단치가 않았다. 평생 직장, 철도에 종사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처음으로 자신의 업무(철도지킴이)에 대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후회 같은 것이 들었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던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철도지킴이 일을 그만두었다. 정말 오랜만에 백수가 되었다. 이 때가 2012년 말이었으니 그의 연배도 어언 60을 훌쩍 넘겨 일흔을 바라보았다.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일평생 일을 했으니 이젠 쉬어도 좋을 나이였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도 만나고 가보지 못한 여행도 가보고, 직장 때문에 미뤄온 일도 하고...그에게도 모처럼 쉼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냥 쉬는시간이 아니라 3남 1녀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자 8동생의 맏이로서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타고난 부지런과 근성일까.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지금도 철도 현직에 계시는 아내의 조언과 마침 (사)철우회에서 퇴직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가 추진중이며 ‘바리스타’ 라는 또 다른 매력에 이끌려 그는 거금 120만 원을 투자, 난생처음 바리스타 교육을 받게 되었다.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쓰면 하늘도 알아준다던가. 2013년 2월, 카페테리아가 드디어 오픈하였다. 그가 평생 몸담았던 코레일 서울본부 1층에 일자리 창출과 코레일 직원들의 복지후생을 위한 스타트, 카페테리아가 문을 열었고 김문한은 바리스타로 제2의 선택을 하게 되었다. 철도퇴직자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 1호인 셈이다. 앞서 말했듯이 카페테리아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업소가 아니라, 코레일의 3만여 임직원과 1만 여 철도퇴직자, 이른바 100세 시대에 걸맞는 일자리,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회원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코레일과 (사)철우회의 경영이념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일하는 것을 좋아 하는 사람은 표정부터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일하는 사람의 표정이 밝으니 또한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덩달아 즐겁다. 시너지(synergy)가 바로 그런 것! 그런 그가 뽑은 한 잔의 커피맛은 또 어떻겠는가?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없이 하는 사람이 뽑은 커피와, 일이 즐거워 즐거운 마음으로 뽑은 커피의 맛과 향은 분명 다르리라. 기분 좋게 브랜딩한 커피향 그대로 마시는 사람에게 전해진다는 신념으로 제2의 길(일), 바리스타 일을 오늘도 즐겁게 하는 남자 김문한! 철도 선배라는 체면은 내던져 버린 지 이미 과거, 오늘도 그는 열심히 그리고 맛있는 커피를 뽑고 사람 편하게 해주는 것이 어느덧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김문환 선배의 서글서글한 이미지가 레일후배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현직 후배들을 위해 고객을 위해 바리스타 근무복속에 자신을 용해시켜버린 자애로움! 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려 깊은 배려인가. 이처럼 당신에게 주어진 당신의 삶을 사랑하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되던가? 아, 한잔의 커피향보다 저 수국의 향기보다 더 향기로운 남자 김문한!...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랑으로 뽑은 그윽한 커피 한잔, 그런 커피 어디서 맛볼 수 있겠는가? 코레일 서울역사 1층, 카페테리아스테이션에 가보시라. 커피 보다 더 진한 사람, 막걸리 같이 구수하고 큰형님 같이 편한 사람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100세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며, 열심히 사는 영원한 철도사나이 김문한의 건강과 언제나 가정에 행복이 넘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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